캄보디아 프놈펜 공항은 여타 동남아의 공항에 비해 비교적 쾌적하다. 입국 비자를 발급하고 수수료를 징수하는 창구는 무질서했지만 경이롭도록 정확하게 본인에게 여권과 비자를 전달했다. 의료 장비의 통관은 까다롭지만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곧 마무리되어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공항에서 10여분 남짓, 몹시도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헤브론 병원은 한국인 의사의 사재와 기부금으로 설립되었는데 한국과 여러나라의 의료진이 방문하여 의료 선교 활동이나 순수 의료 봉사를 한다. 기독교 의료 사역은 물론 다른 종교 단체의 기부나 의료 활동도 가능하다고 하니 설립자의 열린 마음이 보인다.
성산 장기려 기념사업회의 블루크로스 의료 봉사단은 백병원과 고신대 병원의 외과 의료진이 주축이 되어 갑상선암과 유방암을 주로 수술한다. 수술 후 경과 관찰 기간이 일주일이 안되고 현지 의사들의 능력을 고려하여 술 후 부작용의 발생을 최소화 하도록 높은 수준의 기술과 노하우가 필요하다. 따라서 초보자의 경험 쌓기를 위한 수술이나 일부 단체의 실적 쌓기를 위한 단기간의 무리한 수술은 해결하기 힘든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럴 경우 환자와 가족들에게 고통과 실망, 의료 봉사에 대한 거부감을 일으키기도 한다고 하니 마음을 다잡게 된다.
의료인에게 의료 봉사는 행복해질 수 있는 일종의 권리이다. 20년전 처음으로 의료 봉사를 하겠다고 방문한 호치민의 Army Hospital에서의 경험을 잊지 못한다. 기대에 가득한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보던 기형아들과 그 가족들의 얼굴을 마주한 순간 속물적인 목적으로 그곳에 갔던 나에게 밀려온 가슴 저미는 부끄러움은 멈추지 않는 눈물로도 지워지지 않았다. 참회의 마음을 담은 30여건의 Palatoplasty! 수술 시기를 놓친 환자들의 어마어마한 넓이의 구개열을 수술하기 위해서는 희미해진 기억을 더듬어야 했고 많은 상상력과 용기가 필요했다. 일과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기 무섭게 기절하듯 잠들기를 열흘. 몸은 하루하루 지쳐갔지만 다른 뭔가가 채워지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채우려 애썼는지도 모르지만…
지속적인 의료 봉사를 행하려면 의사나 단체의 의지와 관심, 종교관 등이 중요하지만 현실적으로 많은 자금이 필요하다. 따라서 사재를 털기 전에는 자선 단체나 종교 단체 또는 기업의 후원이 필요하다보니 실적과 규모를 무시할 수 없다. 또한 술기를 익히거나 그당시의 나처럼 속물적인 목적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이유로라도 의료 봉사의 경험을 해보면 그런 비 윤리적인 의도를 넘어서는 마음 속의 울림을 반드시 느끼게 된다. 의사로서의 책임과 사명을 다시 한번 다짐하고 스스로를 낮추어 봉사를 행한다는 상투적 표현을 넘어서는, 잔잔히 다가오지만 강하게 휘몰아치는 그 떨림을 알게 된다. 그것은 소리없이 조용한 희열이며 그 무엇과도 바꾸고 싶지 않은 포기할 수 없는 마약이다. 모기향 한박스 챙겨서 덥고 가난한 나라로 몇시간을 날아가 익숙하지 않은 기구로 수술해야 하는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애절한 환자들의 눈빛과 그 잔잔한 가슴의 떨림에 이끌려 습관적으로 짐을 꾸려 그곳으로 간다.
모든 의료 봉사자들은 중독자들이기 때문이다.
상담 안내
전화 / 카카오톡을 이용해
상담 및 예약이 가능합니다